2012년 04월 09일
4월 9일.
몇일 전, 두번째 월급을 받았다. 지난 달보다 약간 많은 액수였다. 어머님께 드리는 돈봉투에 한 10만원정도 더 플러스시킬 수 있을 정도로. 핸드폰은 나머지 소액결제 요금을 내지 못해 발신정지 상태가 되어버렸다. 업무에 지장이 있을 수 있지만 여분의 돈으로 당장 발신정지를 풀어버리고 싶은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다음달 월급을 타면 그때 해결하고 싶어지는 미묘한 나태함이다.
팀이 변경되고 업무가 약간 늘었다. 신경써야 할 일도 생겼고 어젯 밤에는 주어진 업무에 대한 간략한 정리메모를 남겨야할 정도가 되었다. 받는 돈은 변하지 않지만 부려지는 것은 더 늘어난 셈이다. 오늘은 아마도 아침 9시 퇴근이 아닌 오후에 퇴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30시간 동안 직장에 있어야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이상으로.
무료한 인생과 무의미한 나날들이 반복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공허함은 익숙할정도로 잘 알고 있다. 쉬는 것도 아니고 재충전을 하는 것이 아닌, 남아있는 시간들을 하나 하나 세어가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들을 무심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그러나 남들에게 이득이 되는 수 많은 모래성들을 쌓아두고 그것이 내 안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지워지는 것에서 배신감과 허무감을 느끼기보다는 죽은 자가 세상에 내보내는 단 한줄기 회한의 음성처럼 막연한 희열만을 끊임없이 만끽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기나긴 하루를 살아가면서 아침에 태어나는 나를 잠자리에 들면서 잔혹하게 죽이는 일을 쉬임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타인의 호의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허무함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러닉함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허무로 가득 채우며 지나가는 시간들을 안는다.
위로 올라서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을 기회로 생각하라는 말을 웃으면서 듣는다. 그리고 잠들면서 그 말을 들은 나를 내 안에서 찾아내어 죽인다. 내 안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은 언제까지나 사라질듯한 가벼운 영혼만을 지닌 나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포기해도 좋다고 그렇게 정하고 살아왔다. 이용당할만큼 이용당하고, 속을만큼 속고, 가져갈만큼 가져가고, 잊혀질만큼 잊혀져도 마지막으로 남아버리는 내가 내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면서 안심한다. 깃털처럼 가벼운 인생도 결국 무가 되는 것은 생명이 끊어질 때 뿐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그 깃털만큼의 가벼운 무언가가 영혼의 한 귀퉁이에 남아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없는 시간들을 움직이게 한다. 거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여러가지 욕망들은 조그만 고기덩이에 붙어있는 커다란 지방덩어리처럼 말랑하고 달콤하게 녹아내린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아 살기에는 나는 너무도 비관적으로 변해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대화만으로도 순식간에 기운차고 행복해지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진다. '괜찮아. 너는 틀리지 않았어' 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을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그런 사람일수록 인생에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깊숙한 하나의 선 외에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아름답지만, 그럴수록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는 절대 다수들이기에 추악하다.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애정이 넘치는 사람들로만 짜여진 세상이라면 그만큼 끔찍한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되돌리기를 간절히 바랄수록 삶은 어느새 이만큼 지나버렸다. 앞으로도 더 지나버릴 것 같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삶의 무게는 되돌리고 싶은 시간만큼 무겁지 못할 것 같다. 농밀한 기억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중력을 가져 블랙홀처럼 나의 시간을 앗아가고야 말았다.
팀이 변경되고 업무가 약간 늘었다. 신경써야 할 일도 생겼고 어젯 밤에는 주어진 업무에 대한 간략한 정리메모를 남겨야할 정도가 되었다. 받는 돈은 변하지 않지만 부려지는 것은 더 늘어난 셈이다. 오늘은 아마도 아침 9시 퇴근이 아닌 오후에 퇴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30시간 동안 직장에 있어야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이상으로.
무료한 인생과 무의미한 나날들이 반복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공허함은 익숙할정도로 잘 알고 있다. 쉬는 것도 아니고 재충전을 하는 것이 아닌, 남아있는 시간들을 하나 하나 세어가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들을 무심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그러나 남들에게 이득이 되는 수 많은 모래성들을 쌓아두고 그것이 내 안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지워지는 것에서 배신감과 허무감을 느끼기보다는 죽은 자가 세상에 내보내는 단 한줄기 회한의 음성처럼 막연한 희열만을 끊임없이 만끽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기나긴 하루를 살아가면서 아침에 태어나는 나를 잠자리에 들면서 잔혹하게 죽이는 일을 쉬임없이 반복하는 것처럼, 타인의 호의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허무함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러닉함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허무로 가득 채우며 지나가는 시간들을 안는다.
위로 올라서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을 기회로 생각하라는 말을 웃으면서 듣는다. 그리고 잠들면서 그 말을 들은 나를 내 안에서 찾아내어 죽인다. 내 안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은 언제까지나 사라질듯한 가벼운 영혼만을 지닌 나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포기해도 좋다고 그렇게 정하고 살아왔다. 이용당할만큼 이용당하고, 속을만큼 속고, 가져갈만큼 가져가고, 잊혀질만큼 잊혀져도 마지막으로 남아버리는 내가 내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면서 안심한다. 깃털처럼 가벼운 인생도 결국 무가 되는 것은 생명이 끊어질 때 뿐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그 깃털만큼의 가벼운 무언가가 영혼의 한 귀퉁이에 남아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없는 시간들을 움직이게 한다. 거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여러가지 욕망들은 조그만 고기덩이에 붙어있는 커다란 지방덩어리처럼 말랑하고 달콤하게 녹아내린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아 살기에는 나는 너무도 비관적으로 변해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대화만으로도 순식간에 기운차고 행복해지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진다. '괜찮아. 너는 틀리지 않았어' 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을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그런 사람일수록 인생에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깊숙한 하나의 선 외에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에 아름답지만, 그럴수록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는 절대 다수들이기에 추악하다.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애정이 넘치는 사람들로만 짜여진 세상이라면 그만큼 끔찍한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되돌리기를 간절히 바랄수록 삶은 어느새 이만큼 지나버렸다. 앞으로도 더 지나버릴 것 같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삶의 무게는 되돌리고 싶은 시간만큼 무겁지 못할 것 같다. 농밀한 기억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중력을 가져 블랙홀처럼 나의 시간을 앗아가고야 말았다.
# by | 2012/04/09 04:24 | 나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